그림으로 사고(思考)를 표현하다 “비주얼 씽킹 수업”

 

  작년 겨울 식사 후 아내와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아내(현재 특성화고 국어교사로 재직 중)가 수업 시간에 했던 수행평가 내용을 자랑하기 시작했다. 
 
  “우리 학교 애들이 만든 거야. 잘 만들었지?”
 
  대체 뭘 만들었기에 자랑하는지 궁금해 자료를 살펴보았다. 책갈피였다.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시를 읽고 그 시에서 느껴지는 이미지를 시화 형식으로 제작한 것이었다. 자료를 보는 순간 깜짝 놀랐다. 특성화고에 대한 편견이 있어서였을까.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너무나 훌륭하게 시를 표현한 것이었다.

 

 

  “그런 수업을 할 생각을 어떻게 한 거야?”
 
  “아직 비주얼 씽킹 수업 몰라? 요즘 유행하는 수업형태야.”
 
  최근 몇 년간 고3 수업(문제 풀이 위주의 수업)을 주로 했고 고3에서 내려온 이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수업 방식을 고수하던 내 입장에서 비주얼 씽킹이란 단어 자체가 낯설면서도 궁금증을 자아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2015 개정교육과정에서는 학생 중심의 수업을 지향한다는 것에 살짝 부담을 가지고 있던 터라 한 번 알아보고 괜찮으면 내 수업에도 적용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주얼 씽킹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일단은 인터넷을 통해 여러 가지 수업 형태를 알아보았다. 그리고 연수를 통해 보다 많은 정보를 얻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3월에 ‘비주얼 씽킹으로 생각 정리하기’라는 원격연수를 수강하게 되었다. 연수의 내용은 주로 자신의 생각을 간단하게 그림으로 표현하는 방법에 대한 것이었다. 관련 서적도 읽으면서 어느 정도 비주얼 씽킹에 대한 개념이 머리 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비주얼 씽킹(visual thinking)은 자신의 생각을 글과 그림(이미지) 등을 통해 체계화하고 기억력과 이해력을 키우는 시각적 사고 방법이다. 조금 더 간단하게 설명을 하면 생각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고 나누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은 시대에 따라 변모되어왔다.

문자가 없었던 시대에는 구술을 통해 정보를 전달했고 산업사회, 정보화시대 초기에는 텍스트를 활용해서 정보를 공유했다. 지금의 시대는 이미지를 통해 보다 간결하게 정보를 전달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카톡으로 대화를 나눌 때 문자로 나의 생각을 전달하기도 하지만 이모티콘을 활용하면 그림 하나로 많은 생각을 간편하게 전달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정리하면 우리가 생각을 하거나 무엇인가를 구상할 때 이미지 형태로 떠올리는 경우가 많이 있는데 이런 점을 활용한 것이 바로 비주얼 씽킹인 것이다.
 
  비주얼 씽킹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된 이후에 본격적으로 ‘문학 수업과 비주얼 씽킹을 접목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우선 시와 관련해서는 시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를 그림으로 형상화하는 방법을 떠올리게 되었다. 낯선 시를 읽고 떠오른 이미지를 시화로 표현하되 책갈피 형식으로 만들기, 시를 창작하고 시화로 표현하되 엽서 제작하기로 방법을 고안하였다. 책갈피 만들기의 경우, 
‘한 학기 한 권 읽기’라는 독서 활동과 관련지어 학생들의 작품을 코팅해서 다시 나누어 주고 자신이 읽는 책에 끼워 책갈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고, 엽서 제작의 경우 앞면에는 개인 창작 시와 시화를 제작하고 뒷면에는 부모님 또는 선생님께 편지를 써서 전달하는 추후활동도 진행하였다.

또한 문학 작품과 관련 있는 내용을 영화로 제작한 ‘서편제’, ‘동주’ 등의 영화를 감상한 후 영화의 핵심 내용을 4컷의 영화 홍보 콘티 제작하기로 계획하였다. 이 활동들은 모두 수행평가로 진행하였고 배점은 최대한 낮게 하여 학생들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수업을 설계하였다.

 

 

  수업을 진행하면서 몇 가지 문제점이 발생했다. 일단 그림 그리는 것 자체를 부담스러워하는 학생들이 있었고 그림실력이 곧 점수라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었다. 딱딱하고 일방적인 수업에서 벗어나 편안한 마음으로 즐겁게 수업에 참여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나의 생각과는 달리 학생들은 부담을 갖고 있었다.

평가가 선행되지 않으면 학생들이 잘 따라오지 않을 것이라는 걱정 때문에 수행평가로 진행했던 것인데 학생들은 그 자체에 부담을 느낀 것이다. 
 
  누구나 그러하듯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겪게 마련이라 스스로 위안하며 앞으로는 좀 더 발전된 방향으로 수업에 적용해 보려 한다. 학기 초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간단하게 그림 그리는 방법을 몇 가지 알려주고 연습하는 시간을 갖는 것, 판서를 할 때 비주얼 씽킹(마인드 맵) 형식으로 내용을 정리하는 것, 학생들이 단원이 끝나면 단원의 핵심 내용을 비주얼 씽킹으로 도식화해서 정리하는 것 등도 좋은 방법일 것 같다.

학생들에게 비주얼 씽킹 노트를 제작해서 낙서하듯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거나 평가와 상관없이 수업에 적용하는 방안을 고민해 볼 필요도 있다. 
 
  2015 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학생중심수업을 위해 올해는 위에서 언급한 수업을 비롯해 신문 만들기, 한 학기 한 권 읽기 등 학생들이 주도하는 활동 중심의 수업을 진행하려고 노력하였다. 수업시간에 대부분의 활동이 이루어지고 그것을 평가에 반영하려고 했는데도 학생들은 많은 평가에 힘들어했다.

또한 여전히 5지 선다형이 중심인 지필평가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교사 중심의 수업이 진행될 수밖에 없었고 오히려 교사 중심의 수업을 선호하는 학생들도 다수가 있었다. 학생들은 평가의 방향이 다른 수행평가와 지필평가 사이에서 수업에 대한 혼란과 준비에 부담을 느끼는 듯했고 그 점은 학생들이 학기말에 하는 교사 만족도 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창의적 사고력 증진과 학생중심수업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지필평가 방법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수업 방식에 정답은 없다. 교육과정이 추구하는 방향성에 따라 수업도 유행을 탄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수업의 주연은 학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는 조연일 뿐이다. 주연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이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며 이 글을 마칠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