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이후

[매거진] ‘사람이 먼저’ 가드의 산실 송도고등학교
  • 작성일2024.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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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

[점프볼=배승열 기자] 한국농구의 뿌리가 되는 중·고교 아마농구를 찾아가는 코너다. 명지고에 이어 2024년 두 번째로 찾은 곳은 인천 연수구에 있는 송도고등학교다. ‘가드의 산실’이라 불리는 송도고는 송도 농구인들의 스승 고(故) 전규삼 선생의 철학과 정신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오랜 시간 스승의 가르침은 유지하고 노력하는 송도고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본 기사는 농구전문 매거진 점프볼 4월호에 게재됐음을 알립니다.

 

 

그때는 몰랐던 ‘특별함’
1906년 사립학교로 개교한 송도고는 지난 2023년 12월 ‘제104회 졸업식’이 열렸다. 농구부 창단은 1931년 당시 13회 졸업반이던 김정배가 서울 황성기독청년회(현재 YMCA)에서 농구를 배워온 데 있다. 그러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은 전인교육의 일환으로 1928년부터 시작된 교내농구대회였다.

현재 송도고 농구부는 71회 졸업생, 최호 코치가 이끌고 있다. 지난 2003년 모교 지도자로 온 최 코치는 지금까지 후배들을 양성하며 20년 넘는 세월 동안 송도고 농구부를 지켰다. 최호 코치는 “지금 드는 생각은 익숙한 곳으로 돌아온, 항상 여기 있었던 느낌이었다. 특별히 달라진 것은 학교 주변에 많은 건물이 생긴 것뿐이다”라며 웃었다.

1988년 송도고에 입학한 최호 코치는 한양대학교에 진학 후 실업과 프로를 거친 뒤 13년 만에 지도자로 돌아왔다. 60년 넘는 송도고 농구부 역사의 대부분은 최호 코치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최호 코치는 “그동안 내가 농구를 배우고 하면서 좋았다고 느낀 것을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전하고 싶었다”며 “어떤 방식이 옳고 그름이 아니라 내가 좋았고 필요하다고 느낀 것을 지도철학으로 삼았다. 나 또한 전규삼 선생님에게 배운 것을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15회 졸업생인 전규삼 선생은 현재의 송도농구를 일으킨 평생 농구인으로 1983년 언론인 단체가 주는 체육공로상을 수상하였다. 농구 할아버지라고 불린 그에게 최호 코치 또한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지도받았다. 당시 송도고는 중·고등학교가 함께 운동했기에 최호 코치는 5년 동안 전규삼 선생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최호 코치는 “그때는 느끼지 못한 특별함을 지금 와서 돌아보면 느낀다”고 말했다. 과거 운동부에 대한 이미지는 지금과 달리 폐쇄적이며 강압, 구타 등 부정적인 면이 많았다. 하지만 당시 송도고는 ‘50년을 앞선’ 농구부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최호 코치는 “전 선생님께서는 항상 ‘괜찮아! 또 해봐’라고 말씀하셨다. 운동을 하면서 두렵거나 힘들다는 생각이 없었다. 선생님의 생각을 따라갈 수 없지만, 당시 송도중 1학년부터 송도고 3학년까지 매일 똑같은 운동을 했다. 드리블, 패스, 1대1 등 기본적인 운동을 6년 동안했는데 그 점이 제일 특별했던 것 같다. 경기를 앞두고도 특별한 준비보다 변함없이 우리가 하던걸 하면서 5대5 경기를 했다”고 말했다.
 

지금의 스킬트레이닝과 같은 지도 방식 속에 코트 안에서 항상 자유로움 속에 자신감을 강조했다. 수비 로테이션, 수비 자세보다 드리블과 1대1 속에 농구를 배웠다. 아마도 이러한 정신 덕분에 송도고가 ‘한국농구의 가드 산실’이라는 불리는지도 모른다.

최호 코치는 “내 짧은 생각이지만, 특별한 비법은 없다. 기본기 훈련 속에 코트 안에서 가드가 정말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자신감을 준 것이 전부다. 기본기 훈련도 많이 한 만큼 실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이 없었다”고 전했다.
 

송도 농구인
최호 코치가 송도고 1학년 시절 3학년에는 김광은, 문필호, 심상문(현 여수화양고 코치), 2학년에는 홍사붕이 있었다. 송도고는 당시 4강권 전력을 유지했다. 최호 코치는 “우리 때는 홍대부고가 독보적이었다”고 웃었다. 당시 홍대부고는 이상민(현 KCC 코치), 이무진(현 홍대부고 코치), 노기석 등을 앞세워 전국대회를 휩쓸었다. 이어 “용산에는 김승기(현 소노 감독), 박규훈(현 낙생고 코치), 김재훈이 있었다. 용산과는 이길 때도 질 때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최호 코치 이전과 이후에도 많은 송도 농구인이 한국농구에서 이름을 알렸다. 위로는 국가대표 서상철, 유희형(47회 졸업), 김동광(50회), 이충희(57회), 강동희(66회), 서동철(67회, 현 국가대표 코치), 강병수(68회)가 있다.

아래로는 신기성(74회), 김완수(76회, 현 KB스타즈 감독), 김승현(77회)이 있다. 당연히 지금도 SK 김선형(87회), 현대모비스 김지완(89회), 소노 전성현(90회)을 시작으로 LG 한상혁(91회), 정인덕(93회), 정관장 박지훈(93회), 표승빈(101회), SK 최원혁(91회), KT 박준영(95회)까지 KBL 현역 선수로 활약 중이다. 그리고 고(故) 정재홍(84회)도 있다.

최호 코치는 “부임 첫해, 첫 제자(정재홍)였다”고 운을 뗐다. 이어 “재홍이가 송도중에서 소년체전 우승 멤버였다. 하지만 동기들이 모두 다른 학교로 넘어갔는데 재홍이 부모님께서 ‘우리는 송도중을 나왔으니 송도고로 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송도고로 재홍이만 혼자 올라왔다”며 “부임 첫해 봄, 제물포고에 30점 차로 졌다. 이후 7월 평가전에서 그 누구도 송도가 제물포에 안 된다고 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한 골 차로 우리가 이겨서 전국체전에 나갈 수 있었다. 당시 체육관 밖에서 재홍이의 어머니가 펑펑 울었던 것이 생각난다”고 제자와 추억을 말했다.

그 외에도 최호 코치는 수많은 제자를 이야기했다. 그는 “‘사람이 먼저’라는 교시(校是)처럼 모든 제자가 정말 착하고 성실했다. 그리고 재홍이, (김)선형이, (전)성현이, (박)지훈이는 물론이고 프로에서 열심히 운동 중인 제자 모두가 나와 코드가 잘 맞았고 잘 따라왔고 나를 이해해줬다. 고맙다”고 했다.
 

긴 겨울의 끝, 송도 농구의 봄이 오다
60년 가까운 농구부 역사에서 최호 코치는 선수는 물론이고 지도자 생활까지 농구부 역사의 1/3을 함께했다. 당연히 좋았던 순간만큼 힘들었던 순간도 있지만, 현재 송도고는 따뜻한 봄을 느끼고 있다.

지난 3월 전남 해남에서 열린 ‘제61회 춘계연맹전’에서 지역 라이벌 제물포고를 8강에서 누르고 4강에 올랐다. 비록 경복고에 패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지만, 지난 2023년 추계 연맹전에 이어 2024년 첫 대회까지 두 대회 연속 4강으로 마쳤다(송도고를 꺾은 경복고는 춘계 연맹전에서 우승했다). 최호 코치는 “물론 역사가 있는 명문 농구부 학교에서 내가 잘하고 있는지 돌아보며 부담을 느낄 때도 있지만, 모교 농구부 역사와 함께하는 것이 뿌듯하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송도 농구의 가장 큰 특징은 중학교와 고등학교의 연계다. 그동안 송도고는 외부에서 선수를 수급하지 않고 송도중 출신만 받았다. 하지만 현재 3학년 이찬영(평원중)을 농구부 역사에서 처음 스카우트했다.

최호 코치는 “그동안 우리(송도) 선수들을 잘 키우고 올려보내는 것에 초점을 뒀다. 물론 중학교에서 스카우트를 잘해서 올려보내 줬다. 우승 전력은 아니어도 좋은 선수가 나왔고, 중1~고3까지 서로 운동하고 함께한 것이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송도 농구도 무시할 수 없었다. 바로 입시. 대학교 입시제도로 인해 현재 많은 아마농구 지도자들은 성적, 실적, 기록 등 숫자 농구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송도고뿐 아니라 많은 고교농구의 현 주소다.
 

최호 코치는 “이전과 달리진 대입 입시로 어려움이 있었다. 팀 성적이 필요해 선수 수급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스카우트에도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최호 코치는 “내 능력이 어디까지일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학교를 알리며 꾸준히 좋은 선수가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지금 송도고 제자들이 프로에서 이름을 날리는 선수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며 “프로 시즌이 끝나면 선형이, 성현이는 물론이고 가장 적극적인 (최)원혁이까지 많은 선수가 후배들을 찾아와 함께 운동하고 간식을 사주며 응원과 동기부여를 준다. ‘송농회(송도농구)’가 활성화되지는 않고 있지만, 다시 한 번 동문회도 살아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송도고 주장 방성인
“많은 유명한 프로 선배님들이 나오고 가드 사관학교라고도 불리는 전통 있는 학교다. 매년 선배님들이 찾아와 운동도 같이하고 간식도 사준다. 나도 그런 선배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 끝으로 올해 우리가 4강 전력이라는 평가가 부담스럽지만, 첫 대회를 잘 마무리했다. 2024년이 끝날 때 우리가 어느 팀이든 잡을 수 있는 팀으로 기억되고 싶다.”